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로사와 아키라 (문단 편집) === 《8월의 광시곡》 논란 === 《8월의 광시곡》(八月の狂詩曲 Rhapsody In August, 1991년)은 구로사와 감독의 작품 중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평가들과 평화운동가들에게 혹평을 받은 유일한 작품이다. 덧붙여서 이 영화는 [[1991년]] [[칸 영화제]]에 출품되었지만 그 어떤 상도 수상하지 못했다.[* 다만 해외에서의 혹평과 달리 일본 국내에서는 [[일본 아카데미상]] 우수 작품상, 우수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, 그럭저럭 준수한 평가를 받았다.] 이 영화의 줄거리는 [[나가사키]]의 피폭자 친척을 일본계 미국인([[리처드 기어]] 분)이 방문하여 미군의 잔인한 [[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|원폭 투하]]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는 내용이다. 그런데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일본인 피폭자들에 대해서는 [[홀로코스트]] 피해자처럼 묘사한 반면, 전쟁의 원인이나 일본군의 잔혹 행위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는 것. 때문에 이 영화만 보면 미국만 나쁜 놈이고 일제는 그런 미국을 용서해 주는 대인배로 착각할 수밖에 없다. 이는 이 영화의 1년 전에 개봉한 전작 《[[꿈(영화)|꿈]]》에서 나오는 한 에피소드에 2차 대전 당시 [[옥쇄]]를 명령하지만 부하들은 죄다 죽게 하고 홀로 살아남은 [[장교]]가 일본으로 돌아오던 길에 부하들의 원령이 나타나 절규하고 원망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 장교가 울면서 사죄하며 "미안하다! 전쟁을 일으킨 우리가 미쳤다."고 말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던 것과는 너무나 대비되어 한국 비평가와 관객들에게서 [[충격과 공포]] 수준으로까지 받아들여졌다. 본인 역시 이 영화에 대해서는 언급을 꺼려 이 엄청난 돌변에 당시 한국 영화 기자가 인터뷰에서 "《꿈》을 만들고 극우파에게 살해 협박이라도 받아서 이렇게 만들었나요?"라는 비꼬는 듯한 질문을 하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을 정도.[* 당시 한국의 영화 월간지 로드쇼에서도 1990년 칸 영화제 특집 기사 때 구로사와의 영화 [[꿈]]에 대해서 엄청 크게, 호의적으로 기사를 실어 주었던 거랑 달리 8월의 광시곡에 대해서는 비판 일색의 기사를 내보냈다.] 다만 이 영화에 대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'전쟁은 정부, 국가들 사이의 것으로 민중들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.'고 밝힌 바 있다.[[http://cineaste.co.kr/bbs/board.php?bo_table=psd_caption&wr_id=584903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